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스칼의 내기 (문단 편집) === 종교적 비판 ===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 >[[고린도전서]] 13장 2절 (공동번역) 우선 종교적 신념이 손익 계산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 [[더글러스 애덤스]]는 '당신을 위해 믿는 일을 대신하는' [[수도자]] 로봇으로 이 논리를 조롱한 바 있다.], 설령 이런 계산 끝에 종교를 가진다고 한들,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그 전능하신 하느님이 이것을 '진정한 신앙'으로 여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왜냐, 저 말대로라면 하느님을 믿는 것이 진실된 믿음이 아니라 자기가 혹시라도 지옥 안 가고 하느님이 진짜 있으면 이익이니 하느님을 믿자는 건데, 그게 하느님을 제대로 믿는 거냐는 반론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파스칼이 이 말을 한 것이 하느님의 존재증명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도 한다. 게다가 분명히 믿음의 대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문제는 전형적인 give and take의 경우에 해당하는지라 사후세계의 보상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여 이러한 대가들과 비교해 보아야 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즉, 논의 자체가 상당히 계산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정작 종교에서 말하는 신실함과는 십만 광년쯤 떨어진 이야기가 된다는 것. 그리고 애초에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종교를 믿는다는 사실은 종교의 본질과 좀 거리가 있는 선택이다. 당장 기독교만 봐도 그렇게 진심이 없고 단순히 합리적인 생각으로 그런다면 진심으로 믿기는 어렵기 때문. 한 종교인은 파스칼의 내기를 부정하진 않았지만 '''"신앙은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리는 것인데, 평생 믿지 않았던 것을 죽을 때가 됐으니 믿자고 자신의 마음을 가볍게 바꿀 수 있겠느냐?"'''며 돌려서 깠다. 실제로 [[존 폰 노이만]]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큰 고통으로 말년에 어떻게든 [[가톨릭]]에 귀의해보려 했으나, 그리 큰 위안을 받지 못하고 사망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